창간 55주년 기획-세계 선진농법 현장을 가다 (3)‘최고 품종, 최고 맛!’ 변화하는 일본 쌀산업 기후변화에
끄떡없고 재배도 쉬운 품종 육성
‘후후후’의 산실 일본 도야마현농업연구소
밤 기온 27℃·낮 40℃에도 정상 수량·고품질 확보 가능
‘고시히카리’ 단점인 도복 극복 최적의 재배 매뉴얼 정립 도야마현 농가 중심 보급
밥맛 좋은 쌀…소비자 만족 가격도 높아 인기 품종 부상
일본의 쌀산업이 변하고 있다. 품종개발부터 밥 짓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발상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연상시킬 정도다. 특히 최근엔 기후변화에 끄떡없고 밥맛도 최고인 품종을 개발한 데 이어 해당 품종에 대한 맞춤형 밥 짓기 모드를 갖춘 첨단 전기밥솥까지 내놓는 일관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쌀산업의 새 흐름을 선도하는 지역 중 한곳인 도야마(富山)현을 찾았다.
낮 기온 40℃ 육박해도 안정적 재배
“이게 바로 고온에 강한 벼 <후후후(富富富)>입니다. 2003년 품종개발에 나선 이후 15년 만의 결실이지요.”
일본의 북알프스라 불리는 해발 3300m의 다테야마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도야마현농업연구소에서 만난 고지마 요우이치로 육종과장은 고깔 모양의 유리관을 보여주면서 “여름철 밤 기온 27℃, 낮 기온 4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수량과 고품질이 가능한 품종”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7월 하순~8월 중순 이삭이 패고 익을 무렵 이어지는 밤 기온 25℃ 이상의 고온은 조중생종 벼에 큰 위협요인”이라며 “기상이변이 상수인 상황이 됐기에 고온에 강한 벼 개발이 절실했다”고 회상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재배되는 장립종 벼는 유전적으로 고온에 잘 견딘다. 하지만 자포니카 계열의 단립종 벼에 이삭이 팰 시기의 고온은 치명적이다. 단립종 벼는 밤낮의 기온차가 커질 때 제대로 여무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지마 과장은 “밤 온도가 높으면 낮에 광합성작용을 통해 생성한 영양분이 이삭으로 가지 못해 수량이 크게 줄고 품질도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후후후>는 이런 문제에 철저히 대비한 품종”이라고 소개했다.
‘고시히카리’ 최대 단점인 도복 극복
연구소는 품종을 육종할 때 고온에 강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농민들이 선호하는 품종인 <고시히카리>보다 재배가 쉬워야 한다는 것도 조건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고시히카리>의 최대 단점인 도복(쓰러짐)현상을 극복하고 병해 저항성도 갖추도록 하는 게 주요 연구과제였다.
그 결과 2013년, 여름철 초고온에서도 정상적인 생육이 가능하고 <고시히카리>보다 초장이 20㎝나 짧아 쓰러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잎도열병에도 강한 품종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고시히카리> 못지않은 수량과 맛을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였다. 연구소는 이후 3년 동안 약 3000개체로부터 3가지 저항성에 더해 수량과 품질도 뛰어난 계통선발에 힘썼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6년말 마침내 원했던 품종을 육성해 등록할 수 있었다.
다나카 도시키 도야마현농업연구소 연구원은 “중생종인 <후후후>는 도야마현의 물과 흙, 농민에게 최적화된 품종”이라며 “품질도 <고시히카리> 이상이어서 인기몰이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야마현 최고 브랜드쌀로 육성
<후후후>는 현재 도야마현 벼농가 중심으로 보급 중이다. 연구소는 육묘기의 철저한 온도관리로 병 발생을 억제해 농약 사용을 30% 줄이고, 전용 복합비료를 개발해 시비량도 20%나 절감하는 방안을 확립했다. 또 지역에 맞춘 최적의 이앙시기와 재식밀도, 물관리, 잡초 방제, 수확 및 건조방법 등 구체적인 재배 매뉴얼도 제작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재배면적이 지난해 518㏊에서 올해 1100㏊로 2배 이상 늘었다.
짧은 기간에 보급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일본농업신문> 등 주요 언론이 주목하는 품종으로도 부상했다. 특히 <고시히카리>보다 높은 값에 거래되다보니 많은 농가가 재배를 원하는 인기 품종으로 떠올랐다. 연구소는 이러한 수요를 반영, 일본농협(JA) 등과 협력해 현(縣) 전체 벼 재배면적 4만㏊ 중 절반을 이 품종으로 채우겠다는 각오다.
고지마 과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라며 “<후후후> 육성과정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이 재배법을 보다 정교하게 하고 소비방안도 마련한다면 <고시히카리>의 아성을 깨는 품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후후후’ 선택모드 탑재한 전기밥솥 출시 적정 물배합 비율·압력…최고 밥맛 구현
연구 착수 3년 만에 실용화 ‘후후후’ 확장의 지렛대 역할
< 후후후>의 밥맛을 보장하는 전기밥솥이 최근 출시됐다. 일본 도야마현농업연구소는 <후후후>의 품종등록에 앞서 이 품종의 맛과 풍미를 최고로 살릴 수 있는 표준화 방안을 마련한 데 이어 전기밥솥 모드 개발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실용화라는 성과를 냈다.
연구소는 우선 2016~2017년 2년에 걸쳐 <후후후> 식미 관능검사를 했다. 그 결과 유리당과 유리아미노산 등 주요 성분이 <고시히카리>보다 1.2~1.5배 풍부한 것을 확인했다. 이케가와 시호 도야마현농업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이 성분은 밥을 먹을 때 단맛과 풍미를 더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밥맛을 좌우하는 요인은 물배합 비율이다. 물의 양이 밥맛 결정뿐 아니라 밥을 보존하는 데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후후후>의 밥맛을 최대한 살리려면 쌀 기준으로 1.4~1.45배의 물을 더하는 게 최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 전체적으로 열을 가하는 ‘IH압력 전기밥솥’을 이용하면 밥 짓기 전 쌀을 불리지 않는 게 밥맛을 훨씬 좋게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케가와 주임연구원은 “물을 이 비율로 넣으면 <후후후> 밥의 차짐 정도가 알맞고, 밥솥에서 20시간 보관해도 맛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연구소는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전기밥솥의 품종선택 모드에 <후후후>를 넣고자 나섰다. 그 첫 사례로 대형 메이커인 ‘파나소닉사’와 협력해 이 회사가 6월부터 생산하는 모든 전기밥솥의 품종선택 모드에 <후후후>를 탑재했다. 이케가와 주임연구원은 “<후후후>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든 전기밥솥이 시판되면 이 품종을 찾는 소비자들은 더욱 늘 것”이라며 “지역쌀을 넘어 전국적인 브랜드로 도약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편 일본에서는 최근 전기밥솥에 품종선택 모드를 탑재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2013년부터 파나소닉은 물론 조우지루시·히타치·타이거 등 현재 출시되는 주요 브랜드 전기밥솥에는 품종별 모드에 따라 밥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제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일본의 쌀 유통업계는 이같은 흐름이 일본 쌀 소비확대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농민신문 도야마=김기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