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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첨단영농으로 ‘쌀 개방’이겼다
분류
농업뉴스
조회
336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10-19 09:40 (수정일: 2004-10-19 09:40)

일본, 첨단영농으로 ‘쌀 개방’이겼다

인공위성으로 농경지 촬영해 수확시기 분석… 단백질 적고 맛 좋은 "최고의 쌀" 생산해

몇 년 전, 하이패션의 명성을 자랑하는 일본 도쿄의 긴자(銀座)거리 한복판에 ‘쌀 박물관’이 개설돼 일본 초등학생들로부터 견학코스로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쌀을 단지 주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보고 즐기며 먹는 식생활용품으로 늘 시민 곁에 두려는 도쿄도(都)의 의도였다. 도쿄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높아 주말이면 긴자거리에 ‘쌀 박물관’을 찾는 단체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렇듯 일본 정부 당국과 일본 국민들의 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아주 각별하다. 때문에 1993년 외국산 쌀이 일본에 정식으로 수입되었을 때 그 충격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물론 일본 농민들의 거센 반발과 수입 반대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년에 걸쳐 쌀 수입 반대 운동이 격렬하게 있었지만 국제 흐름의 대세를 막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같은 쌀 수입 개방의 여파가 일본 국내에서 아주 이상하고도 고약한 형태로 나타났다. 1994년 당시 일본 농수산성은 다분히 의도적인 전략으로 태국에서 쌀을 수입, 일반 시민들이 어디에서든 태국 쌀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시중 수퍼마켓에 배포했다. 한데 바로 이것이 화근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태국 쌀은 오무라이스나 볶음밥 등 주로 찌거나 볶는 요리에 알맞은 품질이다.

따라서 주식이 쌀인, 특히 밥이 차지고 윤기가 반질거리는 일등미 ‘고시히카리’ 맛에 익숙해진 일본인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즉각 태국 쌀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이 나타났다. 한마디로 맛없어 못 먹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나중에는 언론까지 나서서 태국산 쌀에 ‘죽은 쥐가 들어 있다’ ‘더럽다’ ‘쌀이 너무 길다’라고 말도 안 되는 구실로 대서특필했다. 당연히 태국 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난처해졌다. 일본 언론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태국 쌀을 폄하하자 태국 국민들이 발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국 정부는 공식 채널을 통해 쌀을 선적하기 전에 이미 일본 측의 철저한 검사를 받았는데 웬 죽은 쥐 타령이냐며 강력 대응을 통고해 왔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파만파로 번지자, 급기야 일본 국왕까지 나서서 자신들의 식탁에도 태국 쌀이 올라오고 있다면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그 불씨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일본 농민들은 이 같은 사태를 노골적으로 반겼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농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외국산 쌀 개방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했다. 그 위기를 태국 쌀을 볼모로 전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이겨냈다. 이렇듯 일본 쌀의 아성은 매우 두텁다. 또한 자국산 쌀에 기울이는 일본 정부 당국과 일본 농민들의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더 초월한다.

‘에치코산토농협’서 처음 착안

최근에는 FTA에 살아남기 위해 벼농사에 첨단과학을 도입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쌀은 니가타현(新潟縣) 니가타 평야에서 생산되는 ‘고시히카리’란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는 일본에서 특등미로 손꼽힌다. 실제로 고시히카리는 찰기와 윤기가 잘잘 흐르며, 반찬 없이 밥만으로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당분이 뛰어나다. 하지만 고시히카리라고 해서 모두 품질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 품종도 여러 가지여서 개량 연도에 따라, 지역에 따라 품질이 현저하게 다르다. 그 중 ‘니가타산 고시히카리’가 쌀의 여왕으로 꼽힌다.

니가타는 쌀과 쌀로 빚은 술, 그리고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그의 소설제목에서 ‘설국(雪國)’이라고 명기했듯, 겨울이면 반 이상 폭설이 내려 터널을 만들어 통행을 해야 할 만큼 ‘눈의 나라’로 유명하다. 반대로 여름에는 니가타 평야에 일조 시간이 매우 길고 고온다습해 벼농사에 안성맞춤이다. 벼농사를 할 수 있는 니가타현의 논 총면적은 약 145㏊로, 이 가운데 고시히카리가 45.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니가타 평야는 농지정리가 잘돼 있어 어떤 농기계라도 이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난해 말 니가타현에서 깜짝 놀랄 만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공위성을 통한 벼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인구 1만4000여명(2001년 기준)에 불과한 니가타현 고지기(越路)마을 주민들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바로 인공위성을 통해 농사를 짓는 것이다. 즉 인공위성으로 농경지를 적외선 촬영, 컴퓨터에 입력한 뒤 그 성격을 분석하여 농사에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인공위성으로 적외선을 촬영한 사진에서 빨간색으로 나타난 지역은 좀더 시기를 기다렸다가 수확하고, 반대로 파란색으로 나타난 논은 서둘러 수확하는 방법으로 단백질이 적은 고시히카리를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맛있는 쌀은 단백질이 적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매년 8월 미 항공우주국(NASA)에 2회의 우주선을 예약, 1000㏊ 정도의 적외선 촬영을 하는데, 한 번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350만엔(약 3500만원)이다. 이 비용은 생산농가의 쌀 60㎏당 70엔씩 부담하고, 부족한 금액은 고지기에 위치한 ‘에치코산토 농협’에서 부담한다. 사실 인공위성 촬영 농사기법 도입은 바로 이 ‘에치코산토농협’에서 맨 처음 착안해 낸 것이다.

이 같은 인공위성 촬영 농작 응용기법은 비단 벼농사의 추수 시기뿐만 아니라 다음해 농사에 대비한 퇴비량 데이터, 기온 변화 데이터를 제공해줘 과학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끔 해준다고 한다. 또한 이 데이터는 농민과 농협이 함께 공유, 서로 정보를 교환해 가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에게도 같은 정보를 제공,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를 높여주는 매개체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논밭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농업일지를 작성해 컴퓨터에 입력한 뒤, 농작물에 대한 체계적인 작업일지, 농작물의 발육상태, 농작물의 생산통계 등을 산출, 다음해 농사에 참고하고 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이를 다른 농가에 보급하고 있는 ‘농업기술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휴대폰 이용 농작물 작업일지 활용은 이미 농학계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아, 농업관련 심포지엄 등에 공식적인 주제로 채택되는 등 관련 논문들이 활발히 발표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휴대폰 이용해 농업일지 작성도

한편 이렇게 생산된 쌀은 일본 국내에서 최고의 맛과 품질을 인정받아, 3년째 일본의 대 주조업체인 ‘아사히 주조’에 특등미 가격에 5%를 더 얹은 값비싼 가격에 전량 매입된다.

그러자 다른 지역의 농가에서 큰 난리가 났다. 자신들도 고지기 마을의 농사기법을 전수받고 싶다며 견학신청이 쇄도했다. ‘에치코산토농협’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견학을 원하는 농가들이 워낙 많아 비수기에 잠깐씩 시간을 내어 자문에 응해 주고 있다고 한다.

일본 국내에서 이 같은 인공위성 촬영 기법으로 농사를 짓는 지역은 홋카이도(北海道), 규슈(九州)의 사가현(佐賀縣), 그리고 이바라기현(茨城縣) 등 모두 네 곳. 이 지역 농가에서 생산된 쌀은 모두 일본 국내에서 최고의 쌀로 인정받아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한편 최고의 쌀로 인정받고 있는 고시히카리 외에도 1995년에 개발된 ‘밀키 퀸’ 품종은 맛이 더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밀키 퀸은 농림수산성 농업연구센터의 ‘수퍼라이스계획’ 프로젝트팀에서 의욕을 갖고 개발해 낸 것. 고시히카리의 인자를 변형시켜 개발해 냈다고 해서 ‘고시히카리 돌연변이’ 쌀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한 가지 흠이라면 아직까지는 대량생산이 되지 않아 쌀값이 80㎏에 8만엔(80만원) 이상을 웃돌고, 또한 한정품이어서 특정 대기업이 주문생산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 정부는 쌀 생산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쌀 유통과정을 직접 관리한다. 일본 정부가 수입쌀 전량을 약 200만톤 정도의 ‘비축물량’으로 분리하여 보관하는 것이다. 비축된 수입쌀은 북한 등 외국에 현물 원조물자를 보낼 때 우선적으로 사용되며, 또한 비축량이 늘어나면 술, 과자, 된장 등 식품가공 재료로 활용하고 더 나아가 비누, 샴푸 등 공산품에도 활용한다. 그래도 수입쌀 비축량이 넘칠 경우에는 가축사료로 전환시킨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수입쌀 정책이다. 이 정책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져 시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수입쌀의 위협(?)에서 일본 농민들이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질 좋은 값싼 수입쌀이 계속해서 밀려와 일본 농가들은 벼농사 외에 원예업 등 특수작물에 눈을 돌리고, 정부 당국도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쿄=유재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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