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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농가 잡는 ‘불량 농자재’…생산·유통 업체는 ‘나 몰라라’
분류
농업뉴스
조회
23954
작성자
전인규
작성일
2019-11-29 10:19

“불량종자로 인해 농사를 망쳤다”는 전남 화순의 토마토농가 박현석씨가 문제가 발생한 방울토마토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추천 종자·영양제 등 사용 후 열과현상·기형과 속출 잇따라
업체들은 보상 지연·책임 회피
전문 조정·중재기관 없어 문제 입증 책임도 농가에 있어 불리
업체가 원인규명·실증실험해야

불량 농자재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아 ‘농심’이 멍들고 있다. 불량 농자재의 가장 큰 문제는 일반 소비재와는 달리 피해를 체감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고, 그 피해규모도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하지만 생산·유통 업체들은 의도적으로 보상협상을 지연하거나, 피해 원인을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피해농가들의 재기마저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남 나주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한진용씨가 기형과를 보여주며 이탈리아산 과수영양제가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량 농자재, 멍드는 농심=전남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서 오랫동안 방울토마토농사를 지어온 박현석씨(61)는 올해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대형 종자업체인 ㅁ사로부터 추천을 받아 토마토 종자를 썼는데 수확기가 다 돼도 착색이 안되고, 과가 터지는 현상이 발생해서다.
그는 “6611㎡(2000평)의 밭에서 나온 수확량 가운데 겨우 5% 정도만 건졌다”면서 “업체에서 보상 여부에 대한 답변을 계속 미루고 있어 답답할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지금까지 같은 종자로 피해를 봤다는 사람은 박씨를 포함해 모두 다섯농가로 이들의 피해면적만 해도 2만㎡(6000여평)에 이른다.
나주시 금천면 죽촌리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는 한진용씨(67)는 ㅈ사의 과수영양제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수확철을 앞두고 한 농약사로부터 추천받은 이탈리아산 영양제를 사용방법에 따라 살포했는데 40일 후 과육의 한쪽면만 성장하는 등 기형과가 속출한 것이다.
한씨는 “복숭아농사를 10년 넘게 지어왔지만 이런 참담한 결과는 처음”이라면서 “나무 상태도 좋지 않아 내년 농사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업체 책임 회피방법도 각양각색=상황이 이런데도 농자재 생산·유통 업체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회피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가장 흔한 것이 이른바 ‘지연작전’이다. 보상해줄 것처럼 하다가 피해 입증이 가능한 기간이 지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박씨는 “처음엔 업체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종자값과 육묘비용 전체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비닐하우스 안의 토마토를 모두 처리하자 돌연 태도를 바꿨다”면서 “아마도 업체가 현장검증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피해 원인을 외부환경으로 돌리는 일도 다반사다. 최근 불량한 비닐하우스 필름으로 큰 피해를 본 묘삼농가 조영관씨(60·장성군 황룡면 필암리)는 “필름의 빛 투과율이 형편없이 낮아 대부분 묘삼이 고사해버렸다”면서 “하지만 해당 필름 제조업체는 지금까지도 여름철 불볕더위가 주원인이라며 보상을 거부해 시설하우스 시공을 주관한 황룡농협과 함께 업체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농자재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농가에 보상해주기라도 하면 이것이 소문이 나 자칫 줄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런 점을 의식해 ‘배수진’을 치고 농가 피해보상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업자 입증책임 강화해야=불량 농자재로 인한 피해는 오래 지속되고, 피해규모도 비교적 크다는 점에서 일반 소비재와 견줘 그 피해가 훨씬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피해가 발생했을 때 농민이 신뢰할 만한 전문적인 조정·중재기관이 없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 농업연구기관 관계자는 “농촌진흥청 등에서 현장 피해조사를 나오긴 하지만 업체와 농민 사이에서 ‘기계적 균형’을 염두에 둔 결과보고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농작물 특성상 피해 원인이 워낙 다양하기도 하고, 보고서 작성자가 업체와의 송사에 휘말리지 않으려 몸을 사리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농민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등을 감안, 피해 원인규명의 책임을 사업자가 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의 한 관계자는 “농업이 생명과학에 속하는 전문분야인 만큼 농민이 직접 피해 입증을 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02년 도입된 ‘제조물 책임법’ 적용을 농업계로 확대, 업체가 자신들이 생산·유통한 농자재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자재를 시판하기 전 업체에 실증실험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정범 나주시농업기술센터 과수기술팀장은 “영양제·비료·농약과 같은 농자재는 오랜 시간 농작물에 직접 적용해봐야 유해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농자재에 대한 실증실험을 의무화한다면 부적합한 농자재 유통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농민신문 나주·화순·장성=이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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